자기 의뢰의 사망 (고후 1:8-9)

지난 주 수요일에 상고한 고린도후서 11절로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살 소망까지도 끊어지는 극심한 환난과 고난을 주시는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곧 환난 중에 받은 하나님의 위로로써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함이며, 또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스펄쳔 목사님은 그 중에 두 번째에 대해서 Sentence of Death, the Death of Self-Trust (사형 선고는 곧 자기 의뢰의 사망)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8절을 King James 성경으로 보면, 바울이 당한 환난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We were pressed out of measure, above strength, insomuch that we despaired even of life. 먼저 우리 성경에 고생을 받았다는 구절을 ‘we are pressed’ (짓눌렸다)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말은 무거운 짐을 진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런데 out of measure 의 무게로 짓눌림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심한 고생). 한도를 넘는 짓눌림입니다. 전에 트럭에 보면, 적재량 몇 톤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트럭이 소화할 수 있는 무게를 적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 이상의 무게에 짓눌렸습니다. 그래서 above strength 라고 하였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힘에 지나도록).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꾸 쓰러지셨던 장면과 같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말씀합니다. 죽는 줄 알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에게 왜 그런 극심한 어려움을 주셨는가? 바울이 그처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도였는데, 왜 하나님은 뒤를 팍팍 밀어주시지 않고, 살 소망을 잃어 버릴 정도로 극심한 고난을 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의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스펄쳔 목사님은 자신을 의뢰하려고 하는 인간의 성향을 질병이라고 부릅니다 (The Disease – the tendency to trust in ourselves). 이 병은 누구나 걸리기 쉬운 병이고, 사도 바울처럼 은혜롭고 위대한 사도도 걸릴 수 있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종 바울이 그러한 해로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극약 처방을 하신 것입니다.

자신을 의뢰하는 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믿음의 대상, 신앙의 대상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을 믿고 의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하나님보다 자기가 가진 소유를 의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밭에 소출이 풍성하였습니다. 쌓아 둘 곳이 없었습니다.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곡식과 물건을 쌓았습니다. 여러 해 족히 쓸 물건이 쌓였습니다. 이 부자는 배짱이 두둑해졌습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 이제 아무 걱정 없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자는 어리석게도 재산을 믿었습니다. 재산으로부터 힘을 얻고, 평안을 얻고,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의 마음의 성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재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재물이 그의 믿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만유의 주권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내가 오늘 너의 영혼을 취하면, 그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또 세상에는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은 장래를 장담하는 어리석은 사람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이 사람은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여 장사하여 이득을 볼 것이다”고 장담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안중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도우심은 없습니다. 내가 이 일을 이룰 것이라는 자신감 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 중심 성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고, 야심과 자신의 능력을 믿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네가 내일 일을 아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덧없는 인생을 사는 자여,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일을 하기도 하리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겸손하게, 주의 뜻이면, 주님이 허락하시면, 내일도 나의 생명이 연장될 것이며, 이런 저런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이렇게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언 16 3절은 말씀합니다.

        또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믿는 사람, 힘 있는 자를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사야 31장은 앗수르의 침략을 당하여 애굽에 구원을 청하는 유다의 어리석음을 말씀합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않는도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급한 일이 생겼을 때에,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어리석음을 말씀합니다.

유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애굽의 말과 병거와 마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은 애굽의 군사력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려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31:3).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이 세 가지 예에서, 하나님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재물을 믿는 사람, 하나님보다 자신의 능력과 계획을 믿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보다 다른 사람의 힘을 믿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스펄쳔 목사님은 인간들이 자신을 의뢰하는 경향을 고질병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처럼 겸손한 종에게도 육체의 가시를 주셨고, 가는 곳마다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풍랑을 만나는 등의 죽을 고생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고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치신 것입니다. 바울은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이제 곧 죽는구나, 하고  죽음을 가까이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제 곧 죽을 사람은 이 세상에 믿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의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만해지는 것은 죽음을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쟁터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고 합니다. 죽음이 눈 앞에 왔다 갔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죽음을 망각합니다. 자신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실낱 같는 희망까지도 끊어 버리실 때가 있습니다.     

스펄쳔 목사님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예화를 듭니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힘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력을 다하여 허우적거리는 사람은 힘이 너무 세기 때문에, 구조하려는 사람도 물귀신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에, 다시 말해서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는 발버둥이 다 끝났을 때에, 건져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는 스스로 살 소망을 놓을 때에, 역설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죽도록 힘든 고난을 주셨다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성경은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씀합니다. 나는 사형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종말 의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자신의 힘을 의지하다가 죽음을 앞에 놓고 하나님만 의뢰하게 된 인물로 삼손을 들 수 있습니다. 삼손은 성문짝과 설주와 빗장을 어깨에 메고 갈 정도로 힘이 센 사람이었습니다. 일당 백 정도가 아니라, 당나귀 턱뼈 하나로 불레셋 사람 천 명을 죽인 괴력의 사나이였습니다.

그러던 삼손이 들릴라라는 기생의 무릎에서 머리가 잘리고, 사람들에게 두 눈이 뽑혔습니다. 옥에 갇히어 맷돌을 갈게 되었습니다. 잔치하는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삼손은 그처럼 힘을 빼앗긴 다음에야 비로서 자기가 지금까지 쓰던 힘이 자기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힘인 것처럼 자랑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자기 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삼손의 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에게는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서 기도하였습니다. 삼손이 자기 힘을 믿고 뛰어다닐 때에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을 다 잃고 처절한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 16:28).

삼손이 믿음장이라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이름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기도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두 눈이 뽑히고, 놋줄로 몸이 묶이고, 사람들 앞에 끌려 나와 재주를 부리는 상황에서, 진토와 같이 낮아진 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나를 기억하소서. 하나님이여, 나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그것이 삼손이 드린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을 다시 한번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인생의 마지막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삼손이 힘 자랑을 하고 다닐 때에, 그는 실제로 취약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약하고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참으로 강한 자가 되어서, 우상의 신전을 허물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이스라엘을 대표 선수 다윗과 불레셋의 장군 골리앗은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은 신장이 2미터가 훨씬 넘는 거인이었지만, 다윗은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이었습니다. 골리앗은 놋 투구와 비늘 갑옷, 놋 경갑과 놋 단창과 베틀채같은 창으로 무장하고 방패 든 자가 호위하였지만, 다윗은 사울왕의 놋투구와 갑옷과 칼을 차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골리앗과 다윗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다윗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기가 양을 지키기 위해 싸울 때에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지셨던 것처럼, 골리앗의 손에서도 건져 내실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물매 (돌팔매 막대기)와 돌멩이 다섯을 주머니에 넣고 (40),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에게 나아 갔습니다 (45).

그처럼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나아갔고, 골리앗은 지신의 힘을 믿고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 "너는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왔느냐?" (43). 그러나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에, 골리앗은 다윗이 던진 물매돌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에게는 목동으로서 사용하던 막대기와 돌멩이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으로 골리앗과 블레셋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하셨습니다.

그러한 다윗의 믿음은 인내라는 열매로 증거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왕을 버리셨다고 사무엘상 15장에서 이미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사무엘상 31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전쟁터에서 죽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은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마찬 가지로, 다윗도 사무엘로부터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 곧바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먼저 사울왕을 신하로서 섬겼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서 도망을 다닙니다. 심지어 사울왕이 죽은 후에도 곧바로 왕이 되지 않았습니다. 먼저는 유다 족속의 왕이 되어서 7년 반이나 헤브론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이 죽고, 그가 다스리던 북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자진해서 다윗에게 와서 왕으로 추대함으로 비로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지만, 그 성취의 때를 하나님 손에 맡기었습니다. 자신이 빨리 왕이 되겠다고 성급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하박국 2 3절에 보면,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인간이 보기에 너무 더디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끝까지 기다림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나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없음을 인정하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의뢰하고자 하는 죄성을 제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든 살 소망이 없어지는 극심한 상황까지 우리를 몰고 가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조금 잘 나간다고 해서 자신을 의뢰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십계명의 제1계명처럼 하나님만 의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삼손과 같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만 의뢰하는 인내로 최후의 승리를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