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를 통한 하나님의 위로 (고후 7:2-7)

 

여러분은 고린도후서의 주제를 기억하십니까? 고린도후서 강해 첫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고린도후서의 주제는 위로혹은 격려입니다 (comfort, encouragement). Warren Wiersby목사님은 그의 고린도후서 강해서의 제목을 Be encouraged: God can turn your trials into triumphs 라고 붙였습니다. 고린도후서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는 13절로 11장에 위로라는 단어가 10번이나 나옵니다. 헬라어 동사형은 parakaleo이고, 명사형은 paraklesis 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parakletos (보혜사, comforter) 라고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극심한 환난 속에서도 위로를 주시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는 “찬송하리로다” 라는 찬양 (doxology) 으로 시작합니다 (3). 바울은 아시아에서 극심한 환난을 겪었다고 고린도후서 1 8절로 9절에서 말씀합니다. 바울은 지금 마게도니아에서 고린도후서를 기록하고 있는데, 전에 거쳐 온 에베소를 비롯한 아시아 지방에서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 ‘이제 여기서 죽는구나’ 라고 생각될 정도의 환난을 당했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러한 환난 속에서 위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 후에, 그처럼 고난 속에서 위로를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말씀합니다. 곧 고린도후서 1 4절로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바울에게 환난 중에 위로를 주신 목적은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는 위로자로 삼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보면, 라헬이 자식이 없어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시편 77 2절에 보면, 나의 환난 날에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극심한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환난을 경험한 사람이나, 그보다 더 심한 환난을 경험한 사람이 와서 위로를 한다면, 따로 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것입니다. 바울이 말씀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을 당하고, 살 소망을 잃어버릴 정도로 고생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울을 위로한 위로자가 한 사람 나옵니다. 곧 디도라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디도를 만나고 고린도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잘 이해하려면, 먼저 간단히 바울과 고린도 교회, 그리고 디도와 고린도후서의 관계 등에 대해서 간단히 배경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제2차 선교 여행 때에 개척하고 1년 반 동안 머물며 목회하였던 교회입니다. 고린도 전서는 제3차 전도 여행 시에 3년 동안 머물렀던 소아시아의 에베소에서 기록된 것이고, 고린도 후서 역시 제3차 전도 여행 시 마게도니아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Warren Wiersby 목사님은 고린도후서의 기록 배경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설립하고 1년 반동안 목회하였습니다 (18:1-18). 바울이 떠난 후에, 고린도 교회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서 수습하고자 하였고 (고전 4:17), 고린도전서를 기록해서 보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해서, 불란을 일으키는 자들을 대적하였습니다 (“painful visit,” 고후 2:1 이하).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자, 바울은 혹독한 편지를 써서 (“severe letter”), 디도 편에 보냈습니다 (고후 2:4-9; 7:8-12). 고린도로 간 디도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끝에, 바울은 드디어 디도를 만나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를 기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 12절로 13절에 보면, 바울은 소아시아의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severe letter”를 가지고 고린도로 간 디도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마음이 편치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가 있는 마게도니아로 바다를 건너서 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바울은 마게도니아에서도 육체가 편치 못하였습니다.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그처럼 비천한 상태에 있었던 바울에게 하나님은 디도를 다시 만나게 하심으로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7절에 보면, 디도를 다시 만난 것 자체가 위로였지만, 디도가 전해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이 바울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었던 것입니다. 디도가 전해준 희소식은 무엇인가? 7절 말씀을 제가 여러 번역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새번역입니다: 그가 돌아왔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가 여러분에게서 받은 위로가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사모하고, 내게 대하여 마음 아프게 잘못을 느끼고, 또 나를 열심으로 변호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더 기뻤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이뿐 아니라, 여러분이 그를 위로해 주었다는 말을 듣고, 우리도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또 우리는 여러분이 나를 그리워하고, 깊이 뉘우치며, 나를 위해 열심을 내고 있다는 말을 디도에게서 듣고, 더욱 기뻤습니다.

 

공동번역입니다: 그가 돌아온 것 만도 우리에게 위로가 되었지만, 여러분이 그를 위로해 주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디도는 여러분이 나를 몹시 보고 싶어하고, 나에게 잘못한 일을 뉘우치고, 나를 열렬히 옹호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더욱 더 기뻐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611절로 13절에 보면,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에 대하여 마음을 넓게 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희 마음을 넓히라고 호소합니다 (고후 6:13). 이어서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우리를 영접하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영어 성경들은 Make room for us in your hearts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너희 마음에 우리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거짓 교사들에게 물들어서 바울을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바울을 그리워하며,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바울은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는 중에도 크나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물론, 바울이 디도로부터 고린도 교인들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마음을 넓히라든지, 우리를 영접하라든지, 하는 말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유대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고린도 교회에 변화의 조짐이 있다는 소식이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절에서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찬송한 후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바울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위로자로 세우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위로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도 위로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디도를 통해서,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을 통해서, 바울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Vernon McGee 목사님은 오늘 본문에 대한 강해에서, 목사가 교인들에게 받는 위로의 예를 이렇게 듭니다: You could help some dear saint of God and be a comfort to him. My friend, when was the last time you went to your preacher and put your arm on his shoulder and said, “Brother, I’ve been praying for you. I see that you are working hard and standing for the things of God, and I just want you know I am standing with you.” He would appreciate that.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저에게도 졸업한 지 오래된 청년이 어느 날 전혀 뜻 밖에 카드를 보내올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돌이켜 생각해 보니, 로드아일랜드 중앙교회가 저에게 너무 귀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교회를 지키시는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교회와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라는 글과 함께 교회 앞으로 헌금을 보내는 졸업생들로 인해서, 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위로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나바입니다. 사도행전 436절에 보면, 바나바의 본명은 요셉인데, 사도들이 바나바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바나바의 뜻은 권위자라고 했습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son of encouragement인데, encouragement는 헬라어로 paraclesis의 아들입니다. Paraclesis는 설교 초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보혜사 성령을 가리키는 paracletos와 어근이 같습니다.


요즘 바나바 사역이라는 것이 많이 있는데, 제가 보스톤에 있을 때에, 미국 교회 목사님이 바나바 사역에 가입해서, 거기서 정해주는 어떤 목사님하고 짝이 되어서, 모든 이야기를 흉금 없이 털어 놓고 위로하며 지내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심지어 Barnabas Ministry 팀이 교회에 와서, 예산 위원회에 들어가서 목사님 사례를 올려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바나바 사역 웹싸이트에 들어가 보니까, 기도의 짝을 위로하는 원칙이 적혀 있었습니다:

Encouragement:

·        We affirm one another rather than compete with one another.

·        We listen to each another, cry with each another, and lift each other up rather than tear each other down.

·        We pray with and for each other.

·        We give public support to each other and each others ministries.

 

우리는 부부 사이에 이런 위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교우 사이에도 이러한 위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역자 간에도 이러한 위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과 주일학교 학생들에게도 이러한 위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1 23절에 보면, 바나바가 안디옥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encourage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 권사라는 직분이 있는데, 감리교회에는 남자 권사도 있지요. 권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권하는 자에게 필요한 은사는 위로와 격려입니다.

 

사도행전 11 25절로 26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둘이서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에 환난과 핍박이 임했습니다. 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어떤 사람들은 안디옥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 몇 사람이 복음을 전해서 안디옥의 헬라인들의 수다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안디옥의 새신자들을 교육하는 일에 바나바는 적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위로하고 권면하는 은사는 있었으나, 조직적으로 가르치는 은사는 부족하였습니다. 그는 누가 가르치는 일에 적임자일까, 기도하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연 가말리엘 문하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울이 적임자였습니다. 그는 안디옥에서 다소까지 100마일 길을 여행해서 사울을 만났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에게 Job offer를 했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에게 첫번째 사역의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들의 협동 사역은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큰 무리를 가르쳤고, 처음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3장에 이르면, 두 사람은 한 배를 타고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1차 선교 여행을 시작할 때에는 바나바가 리더였습니다. 두 사람이 이름이 나올 때에도, 바나바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성령이 가라사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 13:2). 그러다가 응근 슬쩍 순서가 바뀝니다. 13 46절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라고 나옵니다. 사울의 이름이 바울로 바뀌면서, 바울의 이름이 바나바의 이름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의 존재는 점점 커지고, 바나바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집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바나바가 천거한 사람이요, 바나바가 job을 준 사람이요, 바나바가 세운 사람이었지만, 바나바는 서운해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바나바의 후원이 없었으면, 사역을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이 은혜라고 했지만, 바나바의 덕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바나바를 통해서 바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바나바가 없었으면, 바울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바나바는 바울은 내가 키운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자신 보다 더 크게 사역할 때에 마음 불편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에 이르면, 두 사람은 2차 선교 여행을 앞두고 의견 차이로 심히 다투고 서로 다른 배를 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과 같은 사랑장을 기록한 바울이나, 초대교회 사도들로부터 위로자라는 이름을 얻었던 바나바도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한계를 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 여전히 부족한 존재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 주는 위로에 목말라 해서는 안됩니다. 참된 위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사람 만이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 내가 받은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위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처럼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후 1:4).

 

여러분도 남이 겪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으셨습니까? 지금 극심한 환난 가운데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로자로 삼으시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시고, 위로자 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담당하는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