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사도 (고후 11:1-15) False Apostles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서 변호합니다. 그러면서 1절에 보면,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않는다고 공언한 사람입니다. 만약 바울이 자기 자랑을 한다면, 하나님이 영광을 가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바라보게 한다면, 바울은 거짓 사도들과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에 대해서 말씀을 전해야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11장과 12장에서 바울은 부득불 자신에 대해서 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거짓 사도들이 (13) 오히려 바울을 거짓 사도로 매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디모데에게 당부하였습니다 (딤후 4:2). 그처럼 복음을 전해야 할 시간에 자신을 변호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좀 용납해 달라고 1절에서 두 번이나 반복해서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회를 심히 어지럽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2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낸다고 말씀하는데, 여기 열심이라는 단어는 영어 성경에 보면 jealousy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물들이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질투를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20:5).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정결한 신부로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하는데,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뱀은 사탄을 가리킵니다 (20:2). 뱀은 간계로 (cunning) 하와를 미혹 (deceive) 하였습니다. 하와를 위하는 척 하면서, 넌지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인격에 대해서 의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마찬 가지로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은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으로 (4) 미혹하여서, 고린도 교인들의 영혼을 더렵혔습니다. 바울은 4절에서 너희가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잘도 용납하는구나, 하고 한탄하였습니다.

 

왜 고린도 교인들이 그처럼 쉽게 속아 넘어갔는가? 거짓 사도들은 사탄의 종들이었기 때문에, 사탄처럼 가장 (disguise)의 명수들이었습니다. 13절로 15절에는 매 절마다 가장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7:15). 그러면서 아주 섬뜩한 말씀을 하시는데,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0 12절에서는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해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리는 양을 해치는 동물입니다. 늑탈한다는 것은 물어 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리가 가운데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선한 목자는 양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있다면, 그것은 위험하고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다른 양들과 같은 양의 모습인데, 속은 이리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머리에 뿔을 달고 다니지 않습니다.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가 사탄의 일꾼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지 않습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의 일꾼들은 천사로 가장하고 다닙니다. 그러면 선량한 양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리를 어떻게 분별해야 합니까? 무엇으로 사탄의 일꾼을 분별할 것입니까?

 

오늘 본문 4절 말씀처럼 무엇을 전파하는가, 그 메시지의 내용으로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웅변에 능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참 선지자가 바울처럼 말에 졸할 수 있습니다 (6). 거짓 선지자는 기사와 능력도 행할 수 있습니다. 광명의 천사처럼 빛나는 외모의 소유자일 수도 있습니다. 의의 일꾼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외모는 분별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심은 하나님만 보시기 때문에 우리는 볼 수 없고, 우리는 메시지의 내용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거짓 선지자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입니다. 계시록에서 마귀는 용으로 나오고, 적그리스도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으로 나오고, 거짓 선지자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으로 나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방하는 unholy trinity입니다.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 거짓 선지자의 번째 특징은 거짓입니다. 11절에 보면, 새끼 양같이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하였습니다. 모양은 순한 양인데, 하는 말은 마귀의 말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특징은 이적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13 13절로 15절에 보면, 불이 하늘로서 땅으로 내려오게 하는 이적을 행하기도 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우상으로 말하게 하기까지 한다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3 22절에서 예수님은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사람들을 미혹하는 방법이 무엇이라고요? 기사와 이적입니다. 초자연적인 이적을 보이기 때문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사와 이적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기적을 행하는데, 하는 말이 이상하다, 성경에서 벗어난다,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 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자기가 진짜 선지자라고 속이기 위하여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구약의 신명기 13 1절로 3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기준은 그가 행하는 기사와 이적이 진짜인가 가짜인가가 아닙니다. 그들은 기적을 베풀고, 그들의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분별 기준은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자고 미혹하는 자는 아무리 기적과 예언의 신통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명기 13 5절에죽이라 하였습니다. 계시록 19 20절에도짐승이 잡히고,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둘이 채로 유황 붙는 못에 던지우게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것이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던 거짓 선지자의 최후입니다.

 

사람들은 이적 앞에서 꾸뻑 죽습니다. 예언이 맞으면 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고 말씀합니까? 눈에 보이는 이적과 점쟁이 같은 예언을 따라다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신앙인가를 성경은 분명히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도 거짓 선지자가 나옵니다. 요한일서 2 19절에 보면, 적그리스도의 무리가 우리에게서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는 그러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서신이라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 1절은 말씀합니다. 누군가 나타나서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특별한 영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 나는 특별한 영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나에게는 기사와 이적이 따른다, 나에게는 직통 계시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 영들을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다른 예수, 다른 복음과 함께 다른 영이 나옵니다. 다른 영이란 고린도 교인들이 처음에 받은 성령과 다른 마귀의 영을 가리킵니다. 요한일서 46절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대조합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진리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증거하는 영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5 26절에서 말씀하시기를장차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나를 증거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14절에서는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나의 영광을 나타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케 합니다.

 

참된 선지자는 자신의 경험과 환상과 기적을 보이며 자기를 신격화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미혹의 영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왜곡시키는 가르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불완전한 것으로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 말씀하는 미혹의 , 거짓 선지자는 다름 아닌 영지주의 이단이었습니다.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가장 많이 말씀하는 곳은 예레미야 23장입니다: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16-17).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백성에게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21-22).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25-26).

 

오늘날로 말하면, 거짓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자기 자랑하고, 하나님이 꿈에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하고, 거짓 평안으로 사람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처럼 거짓 사도,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가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열매로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양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인데, 이리는 양떼를 흩으며, 목자를 따르는 양을 물어가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말씀이 사도행전 20 29절로 30절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장로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이라고 말씀했습니다 ( 20:29-30). 공동번역을 참조해서 다시 읽습니다: 내가 떠나면서 사나운 이리떼가 여러분 가운데 들어와 양떼를 마구 흩을 것이며, 진리를 그르치는 말을 하며 신도들을 이탈시켜 자기를 따르라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분별을 하여야 합니다. 양떼를 흩트리고 양을 물어가는 것은 양이 하는 일이 아니라 이리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봅시다.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란 존재 의미가 없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무화과가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은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란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무화과에서 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못 피운다면, 목재로라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할텐데, 무화과 나무는 포도 나무처럼 구불구불 옆으로 퍼져서 재목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화과 나무는 오직 열매를 얻기 위하여 심는 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 16절에서, 택하심의 목적은 과실을 맺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잎만 무성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란 머리만 길고 타락의 길을 걷는 나실인 삼손처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인간을 가리킵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곧 신자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거기에 합당한 삶이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한 우리는 겉으로만 선량한 양같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마음의 할례를 받은 참된 그리스도인입니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 혹은 겉은 깨끗하나 속은 더러운 그릇에 비유하셨습니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 23:26). “너희가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23:28).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외식자입니까? 아니면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신자입니까? 김치를 할 때에 배추를 소금으로 절이는데, 소금이 배추 속으로 들어 가니까, 숨이 죽어서 배추가 축 처집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마음 속이 변해야 합니다. 마음 속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절여져야 합니다. 속사람이 변하지 않은 외식적인 크리스챤은 불신자들의 조롱이나 받고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다.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고, 마음 중심에 늘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동행함으로, 참과 거짓이 밝혀지는 심판 날에 하나님의 칭찬받으시는 저와 여러 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